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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중리와 할매와 나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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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나 님 


숫자란 때로 잔인할 정도로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이를테면 이럴 때.

과거로부터 그리 멀리 떠나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떠나 온 시간만큼의 숫자를 문득 마주하게 되는 순간. 영도 거주민이었던 7세부터 12세까지의 나와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그리 달라진 것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건너온 시간이 ‘21이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행성계 하나가 그사이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시내버스 113번의 종점인 영도 중리와 그 위에 있는 75광장에는 과거 포장마차가 성행했다.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에겐 그 불빛들과 바다의 풍경이 마치 사진처럼 기억되어 있다. 아버지는 퇴근 후 종종 그 포장마차 중 한 곳에 먼저 자리를 잡고 어머니와 나, 동생을 부르곤 했다. 때로는 75광장이었고, 때로는 등대와 방파제가 보이는 중리 바닷가였다. 안줏거리로 저녁 식사를 할 때면 기묘한 설렘이 있었다. 아주 붉지도, 그렇다고 아주 노랗지도 않은 주황빛의 천막과 불빛이 자주 볼수록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기 때문일까.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나가는 순간이 그저 좋았다. 거기에 도착해선,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밖에 나가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근처를 뛰어다니며 두 눈 가득 풍경을 담았다. 그땐 카메라가 되는 핸드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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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퇴근길 지나가게 되는 75광장 

 

이제 이곳은 텅 비어 있다. 포장마차는 하리나 해녀촌 등으로 자리를 옮겼고, 75광장과 영도 중리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지역주민들의 쉼터이자 조용한 일터가 되어 있다. 또한 나 역시 이제는 자라 성인이 되었고 더는 영도에 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매일같이 영도에 오기를 4년째. 언젠가 어머니는 네가 영도에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게, 사람 일은 도통 예측할 수가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묘한 긴장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매일 출근길에 지나가는 75광장과 영도 중리의 모습은 다채롭다. 아니,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바다의 풍경이 매일 다르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그게 일상이 되는 순간 무뎌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아직은 그렇지가 않다. 운전을 하다가도 종종 시선을 빼앗겼다가 1초 후 다시 정면을 응시하기를 여러 차례다. 어릴 때는 그곳의 하나하나를 다 자세히 보며 노느라 바빴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전경을 보며 액자에 걸어도 좋을 풍경에 감탄한다. 한 번은 출근하다 시간이 남아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바다를 감상하기도 했다. 어릴 땐 없던, 카메라 되는 핸드폰으로 열심히 바깥 풍경을 찍어 보았는데 결과물은 형편없었다. 눈으로 가득 담았던 그때 그 풍경과 다르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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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중리포구 풍경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도를 떠났다. 한낮에 떠났다. 사실 초등학생이던 나도 알고 있었을 만큼 영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도 할매의 존재감은 굉장했다. 할매가 영도를 떠나는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고, 그러니 할매가 잠든 밤에 떠나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야 그것이 왜곡된 전설에 지나지 않으며,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이야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물론 진지하게 믿었던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참나, 그럼 나는 나가게 되면 더 잘 살아야지.’라고 호기롭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한낮에 떠나는 순간이 되자, 두려웠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살던 공간이 바뀌는 것은 어린 나에게 그 자체로 큰 공포였다. 영도 할매의 저주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우리 집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영도는 우리를 품어주었다. 그리고 떠난 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혼자 다시 영도 중리를 찾았을 때도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우리 가정은 영도를 떠난 이후 점차 안정을 되찾고 더 나은 삶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영도 할매는 사실 영도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도를 떠났다 다시 찾아오는 이들에게 저주 대신 축복과 행운을 빌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다시 영도에서 보내며, 매일 새로운, 이제는 포장마차를 찾아보기 어려운 영도 중리의 바다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이한나

봉삼초등학교 5학년 때 영도를 떠났다가 한국해양대학교 전임연구원이 되어 다시 영도에 돌아왔다.
좋은 글과 음악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행 #글쓰기 #음악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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