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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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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대교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가 생기기 전이었던 1990년대 후반의 영도에는, 육지를 이어주는 두 개의 다리인 영도대교와 부산대교가 있었다. 1980년 부산대교가 열리기 전까지는 지금의 영도대교가 부산대교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영도에서 이 다리들을 타고 나오면 남포동이나 중앙동으로 이어진다. 동삼동에 살던 우리 가족은 종종 남포동에서 외식을 하곤 했다.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들어선 오늘날의 영도와 달리, 당시 영도에서는 외식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는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친척을 만나러 갈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영도를 빠져나갈 때면 어김없이 영도대교나 부산대교를 지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다리들은 영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건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가 없었기 때문에 그 존재감은 그때가 더욱 절대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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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여울길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나 버스를 탔다. 7, 70, 717이 들어간 번호를 쓰는 버스가 유난히 많았던 게 여전히 기억난다. 그러면 그 버스는 우리 동네에서 이송도길과 최근 흰여울길로 유명해진 영선동 부근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거칠게 지났다. 나는 늘 그 길이 보여주는 풍경에 매료됐다. 변화무쌍하고 눈부신 바다와 그 앞으로 고요히 둘러선 사람들의 거주지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여행지도 부럽지 않았다. 그래서 꼭 버스를 탈 때는 왼쪽 창가에 붙어 뚫어져라,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좌석을 선택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흰여울길 도로 부근을 채운 예쁜 카페와 많은 관광객을 볼 때, 분명 같은 장소임에도 기묘한 향수에 사로잡히곤 한다. 어떤 공간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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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백화점 광복점에서 바라본 부산대교와 영도 


영도를 잠시 빠져나가는 여정은 계속된다. 버스를 탔기 때문에 영도대교나 부산대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 내가 탔던 버스의 노선은 주로 영도대교로 나 있다. 남포로 향하기에는 영도대교가 훨씬 거리상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점이 당당히 큰 길가에 서 있던 그때의 정류장에서 내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약속 장소로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만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주로 밤이었기 때문에 버스 대신 택시에 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 또는 아빠는 택시 기사님에게 ㅇㅇ대교로 해서 ㅇㅇ아파트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어린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귀갓길 우리 가족의 선택을 받는 다리는 부산대교일 때도 있었고, 영도대교일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다리든 내게는 잠들기 직전의 나른함과 어두컴컴한 바다, 그리고 노란 가로등 불빛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이어지는 기억은 택시에서 내릴 땐 아빠가 나를 업거나 안아주기를 기대하며 일부러 잠에서 깨지 않은 척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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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개행사 중의 영도대교(현재는 코로나19로 진행하지 않음) 

 

그때까지만 해도 영도대교는 도개 행사 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아니, 나는 그 다리가 원래 들려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걸 부모님의 이야기로만 어렴풋이 전해 들었을 뿐, 한 번도 그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 2013년 도개 행사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의 나는 이미 영도 주민이 아니었고, 당시 연재하던 칼럼 작성을 위해 취재 차 영도대교 밑의 공원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소수의 젊은 사람들과 다수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리 하나를 바라보며 다리가 열리기를, 1950년대의 풍경을 다시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가요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오후 2시가 되었고, 다리의 가운데 부분은 예상보다도 훨씬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올라갈 때의 속도로 내려와 우리에게 친숙한 대교가 되었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어떤 할머니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고, 나는 카메라로 다리를, 또 다른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도개된 다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댔다. 나에게는 열리지 않는 영도대교, 부산대교와 함께 절대적 존재감을 가져왔던 고정된 그 다리가 더 추억에 가까웠기에, 감상에 젖지 않고 묵묵히 사진만을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어떤 곳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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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나 님  


이한나

봉삼초등학교 5학년 때 영도를 떠났다가 한국해양대학교 전임연구원이 되어 다시 영도에 돌아왔다.
좋은 글과 음악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행 #글쓰기 #음악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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