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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울림, 깡깡이 예술마을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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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진 님  


관광지의 바다가 아닌 사람의 삶이 있는 바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시기는 대학교 2학년(2019) 가을 무렵이었다. 해양수도 서사 워크숍을 통해 한국어문학과 학부생들과 영도 깡깡이 예술마을 일대를 탐방했다. 부산 중구와 영도구의 가교역할을 하는 영도다리를 걸었을 때 오래된 세월을 간직한 선박들이 보였다. 아직 마을 항구에 거칠게 남은 선박의 흔적은 세월을 고스란히 품었고, 그곳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선박을 따라 깡깡이 예술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알고 보니 영도대교와 인접한 깡깡이 예술마을은 조선업 100년의 역사가 있었다. 이 마을에 들어서자 잊고 있었던 영도의 모습이 떠올랐다. ‘깡깡이 예술마을은 지역 예술가들의 예술 프로젝트 이후 새롭게 달라진 예술마을의 모습과 수리조선업과 깡깡이 아지매의 유래가 남아 있다. 선박의 녹슨 따개비를 벗겨낼 때면 강력한 마찰로 인해 , , 소리가 나서 깡깡이라고 불렀다.

 

깡깡이 예술마을이 위치한 곳은 부산 영도구 대평동이다. 두 개의 물양장은 두 축으로 나뉜 마을이었다. 마을 방향을 안내해주는 팻말 옆에는 지명의 유래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대평동의 원래 이름은 대풍포였다. 바람을 의미하는 대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대평으로 바꿨다고 한다. 근대 최초로 불리는 조선업의 발상지이고, 오늘날도 공업 거리를 걷다 보면 작업복을 입고 수리조선업을 하는 공장 근로자들이 있다. 빌딩 높이의 선박 위에 올라가서 깡깡이질을 해야만 했던 깡깡이 아지매들의 삶도 있다. 최초의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가 생긴 이후 못 고치는 배가 없다는 풍문은 마을 사람의 자긍심이 되었다. 아직 마을 항구에는 수리를 기다리는 선박이 줄지어 있는데 거칠게 남은 선박의 흔적은 세월을 고스란히 담았다. 마을에 거주하신 분들의 삶을 헤아렸을 때, 평안을 간절하게 염원했던 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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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깡이 예술마을 입구 


마을 부회장님께 깡깡이 예술마을을 묻다


깡깡이 예술마을을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누군가 내게 깡깡이 예술마을에서 기억 남는 풍경을 묻는다면 여러 장면이 떠오르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을 말할 것이다. 마을 풍경을 보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주변에는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공장 부지 특성상, 골목은 자동차로 이동하기에 폭이 좁아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일화가 있다. 깡깡이 아지매의 손에는 망치가 있듯, 깡깡이 마을 근로자들의 발끝에는 자전거가 있다. 자전거 골목길이 있는 물양장에는 용두산공원, 선박이 가득한 자갈치 시장이 보였다.

자전거 통로 길을 따라 걸으면, 선박 체험관을 관리하는 곳인 깡깡이 안내센터가 있다. 깡깡이 안내센터 1층에 방문하니 40년 이상 대평동에서 사신 부회장님이 앉아 계셨다. 깡깡이 예술마을을 돌면서 선박 관리는 물론 주민들이 겪는 애로사항을 수렴하는 등 마을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일을 도맡고 계셨다. 본 글에 담을 간단한 인터뷰를 응해주셨고, 이야기는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 고향은 울산인데,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려고 부산에 내려왔어. 부산에 온 지 50년 정도 됐어. 그 당시에는 판잣집도 많았고, 수리 조선소가 부활했던 시기에는 이 집 저 집에 사는 주민들도 꽤 살았지. 지금은 사라졌는데 옛날에는 배들이 다 목선이었고 요 바다 앞에는 예인선이 많았어. 소금 공장이랑 간장 공장도 있었고 대평동은 사람들도 많이 다녔어. 지금은 빈집이 많고 대평동에서 오래 거주하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지. 지금은 깡깡이 예술마을이 되니까 학생들이 한 번씩 사진도 찍고 그라데. 예술마을이 앞으로도 잘돼서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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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 조선소 앞 풍경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마을 부회장님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대평동의 호황기였다.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호황기였던 시절은 마을 주민들에게 진담처럼 회자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부회장님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대평동의 변화도 기억했다. 마을 공간을 지킨 주민들의 의지는 굳은살처럼 깊게 자리했고, 주민들과 후대의 예술가들이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에 모여서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다양한 예술 작품이 자리 잡으면서 마을은 하나가 되었다. 부회장님은 자발적인 활동들이 축적되어 마을이 변화했다고 말씀했다. 주민들이 직접 시를 짓고, 삶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소식지를 만드는 등 마을의 생활 리듬을 바꿨다. 깡깡이 예술마을을 처음 찾아오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여쭤보았다.


깡깡이 예술마을은 전국에서 다 와. 주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이곳에 배우려고 많이 와. 문화해설사님이 학생들이랑 견학하고 마을 해설하시지. 학생들에게는 깡깡이의 유래, 다나카 조선소를 시작으로 형성된 마을의 전반적인 역사를 알려주는 편이야. 요 앞에 벽화를 자세히 보면 사람들과 공구들이 그려져 있는데, 깊이 보면 대평동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어.”

 

깡깡이 예술마을이 근대 역사가 보존된 마을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방문했지만, 마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했다. 관광 목적으로 온 사람은 볼 것이 많이 없다는 반응, 마을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재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다큐멘터리에 조명된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조선소와 낯선 바다 풍경 이면에는 주민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가 있었다. 50년 이상 살아온 부회장님께 깡깡이 예술마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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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깡이 안내센터 거리풍경 

 

여기는 조선소가 있어서 다른 변화가 생길 수가 없어. 왜 그렇냐면 이 마을은 중공업 구역이야. 중공업 구역이 되면 건물도 고층으로 지을 수 없고, 작업으로 인한 분진이나 매연이 탁하고 사람이 살기는 어려워. 요즘은 없던 아파트가 새로 생기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더 나은 환경으로 떠나면서 빈집이 많이 생겼지. 그래도 공장이나 철공소에서 이뤄지는 선박 수리는 아직 하고 있어.”

 

매년 빈집 추세를 보면서 깡깡이 예술마을에도 빈집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빈집이 있는 구역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부분은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한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깡깡이 예술마을의 빈집들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겠냐는 내 질문에, 빈집들은 지역 작가와 지역 예술가가 상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성화되기를 바란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도 여타 문화예술로 알려진 마을을 떠올렸을 때 비슷한 해답이 떠올랐다. 이곳에 사람이 모이게 하려면 빈집들은 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마을 상생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다.

 

아쉬운 점은 항상 그거지. 깡깡이 예술마을은 주차장이 없어. 요즘은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자동차잖아. 차 댈 곳이 없어. 학생들이 견학 오면 관광버스가 오는데 관광버스 댈 곳도 없어. 빈집을 허물어도 주차장을 만들 곳이 없고, 건의해봐도 해결되지 않아서 아쉽지.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페인트칠도 하고 가로등 설치, 길고양이 배설물 처리 등 환경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 마을 환경은 예전보다 많이 개선됐어.”

 

깡깡이 예술마을의 현재는 미래를 빛낼 앞날을 예견했다. 마을 부회장님을 비롯하여 힘을 보태는 분들은 작은 활동부터 함께 일하며 마을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이 마을 환경 개선을 시작하니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서 동참했다. 깡깡이 예술마을은 마을의 주체가 된 이들이 서로 화합하면서 힘찬 내일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수진

영도를 배우는 대학생
영도 서포터즈 활동 2년차, 영도를 자주 탐방하며 글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도에서 여운 가득한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꿈입니다.

주소.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로 27번길 8-8, 2층 영도문화도시센터 전화.051-418-1863 팩스.051-418-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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