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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이야기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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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대 자갈마당 


할머니와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한 장. 나와 내 동생과 할머니는 활짝 핀 꽃을 배경으로 서 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 날의 나들이는 어김없이 할아버지의 운전으로 시작되고 끝났다. 차의 앞면과 뒷면이 기다란 검은색 중형차. 버스 운전을 하셨던 할아버지의 차는 언제나 거침없이 질주했다. 종종 그렇게 거침없이 할머니와 함께 영도의 우리 집으로 오시곤 했던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태우고 드라이브 코스로 삼았던 곳은 어김없이 태종대였다. 사실 태종대는 이 근처 초등학교에 다닌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 소풍으로 방문해봤을 정도로 흔한 장소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내게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태종대에 가면 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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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대의 풍경 


태종대는 역사적으로도 꽤나 특별한 장소였던 것 같다. 어쩌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 기암괴석이라는 비범한 자연환경이 지닌 숙명인지도 모른다. 전해 내려오는 신라의 태종무열왕과 조선의 태종, 두 태종에 얽힌 이야기는 태종대를 좀 더 풍성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태종무열왕의 경우 심지어 태종대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태종대에 와서 활을 쏘고 갔다는 것, 그리고 일본 토벌을 위해 태종대에 머물렀다는 것. 실제로 화창한 날 태종대에서는 일본의 대마도가 보인다. 한편 조선의 태종은 가뭄이 들었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실제로 비가 내려 음력 5월 초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이야기 하나 평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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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에서 바라본 배


정작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태종대를 제집 드나들 듯하던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전혀 모르고 지나쳤다. 당시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장소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자살바위였다. 지금은 바위에 직접 발을 딛고 서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땐 많은 사람이 그 바위 부근에 앉아있기도 하던 때였다. 실제로 투신한 누군가의 신발이 많이 발견되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 어린 내가 자살바위에서 조심스럽게 내려다본 풍경은 그 이름만큼이나 무시무시했는데, 뒤를 돌아보면 성스러운 표정의 모자상이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피에타를 연상시키던 그 조각품은 1976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살바위의 오명을 벗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그 조각상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삶은 한 번쯤 더 일어나서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냐고. 초등학생이었지만 자살바위와 모자상의 대비는 인상적이었다.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와 같은 공간 뒤로 비현실적일 정도의 빼어난 풍경이 있었다.

 

언제나 태종대로 향하는 자동차의 핸들을 잡고 계실 것만 같던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나 역시 그로부터 몇 년 전 영도를 떠난 뒤였다. 이후 처음으로 태종대를 다시 방문했을 때,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이상한 감정의 울렁거림을 경험했다. 친구들이 옆에 있어 애써 숨기려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태종대는 언제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한 장소였던 것이다. 장소가 자꾸만 부재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할머니마저 먼 길을 떠나신 지금, 태종대와 가까운 곳에 일하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찾기는 어렵다. 비범한 이야기들을 오랜 시간 간직한 태종대를, 나 역시 나름의 개인적인 비범한 이야기들로 덧칠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야 나 혼자 다시 찾게 된 태종대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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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대 다누비열차


요즘의 태종대는 수국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알려져 있다. 6월과 7월 만개하는 색색의 수국이 태종대를 뒤덮을 때 찾게 되면 참 좋을 텐데,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작년에도 수국 축제는 열리지 못했다. 너무 늦지 않게 두 분의 기억을 안고, 새로운 꽃의 풍경을 두 눈에 담으러 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해안가의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 길을 달리는 다누비 열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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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나 님 


이한나

봉삼초등학교 5학년 때 영도를 떠났다가 한국해양대학교 전임연구원이 되어 다시 영도에 돌아왔다.
좋은 글과 음악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행 #글쓰기 #음악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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