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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를 위한 다채로운 사례들을 연재합니다

문화도시 안에서 문화예술-인재양성

김월식 무늬만 커뮤니티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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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월식 무늬만 커뮤니티 디렉터 


들어가면서

처음 나에게 의뢰된 문화도시 안에서 문화예술-인재양성이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흔쾌하게 원고의 기재를 수락한 이유는 문화도시 안에서 문화예술-인재양성이라는 어감에서 주는 경직됨, 또 한편으로는 이 거창하고 뻔뻔한 간절함을 어떻게 토닥일까? 하는 안쓰러운 감정의 발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화도시문화예술인재양성의 부피감에 반하는 밀도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외부로 향하는 피부에만 집중되어 있다. 마치 메이크업 베이스를 하지 않은 화장처럼 덕지덕지 피부에 붙어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 가짜 홍조의 모습처럼 말이다.

 

양생(養生)과 양성(養成)

각설하고, 난 왜 문화도시 안에서 문화예술과 관련된, 연루된 인재들을 양성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정확하게 어떤 인재들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막연함이 간절함을 외면하게 만든다. 문화도시의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게 해주는 인재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시민들이 직접 문화적 예술적 체험과 경험의 접촉면을 넓게 만들어 주는 인재가 필요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수월성 높은 엘리트 전문가적 예술가들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 필요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에게는 체감적으로 너무 빠른, 그리고 부족한 시간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 시간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다루는 인재가 양성될 수는 있는 것인지. 콘크리트가 굳어 가는 과정처럼 양생(養生)되는 과정이 왜 문화도시 안에서 문화예술-인재양성(養成)’과정과 자꾸 동일하게 인식되는지 그 연유도 알 수 없다.

 

빛 좋은 개살구

문화도시라는 유행어가 광풍적으로 전국을 강타하고 그 바람을 타고 ‘000 인재 양성이라는 프로그램이 지자체 별로 경쟁하듯 만들어지고 (‘지역문화 진흥원같은 공공기관에서 노골적으로 이 경쟁을 부추기는 코미디 같은 일들이 실제로 비일비재했다) 그 성과(?)로 등위를 세우고 베네핏(?)을 약속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문화와 예술의 인재 양성이, 그 안에서 양성된 인재들이 TV 속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미래의 베네핏을 보장하는 것 같은 착시를 조장했다면 오바(?)스러운 반응일까? 통계적으로 보면, 대략 일 년에 약 6개월 정도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그것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 대부분 비대면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강의를 듣거나 문화 기획에 대한 기획서를 쓰고 멘토라 지정된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받으며 그 기획서를 수정하는 것 정도(?)로 전체적 인재 양성의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지자체장 명의의 수료증을 받으면 이 인재 양성 과정은 끝난다. 이 과정을 수료한 어떤 인재는 이력서의 스펙에 한 줄 도움이 되는 과정(?)으로 충분했다는 말을 전한다. 10여 년을 이런 과정의 중심에서 욕도 먹고 욕도 많이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진실의 속내들은 속 쓰리고 더부룩한 소화불량을 겸비한 변비적 심정으로 귀결된다. 이유야 대충 알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속설처럼 부풀려진 장기들을 부여잡고 지난 삶에 질문을 던져볼 요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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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문화도시를 유치하지 못한 도시에는 문화가 없는 것인가? 인재를 급하고 뻔뻔하게 양성하지 않으면 지역에서 인재를 만나기란 묘연한 것인가? 왜 우리는 문화를 경쟁의 목표로 설정하고 문화적 삶을 살아가는, 살아내는 삶의 주인인 시민들을 인재라는 명분으로 도구화하고 수단으로 소비하는가?

문화는 과연 교육과 학습, 조직화 된 시스템으로 지식과 경험처럼 전달 가능한가? 문화 도시에 살지 않으면 문화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인가?

 

플레이 백 시간을 조금만 감아서 초초한 인재 양성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니

예술은(예술을 매개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정도의 자기 수련을 거쳐야 하는 만큼 누구나 쉽게 예술가가 될 수 없고, 그렇기에 사회는, 사람들은 한 명의 예술가의 사상을, 사유를, 실천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또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꼭 예술가가 되지 않더라도 예술적 경험과 숙련과정에서의 체화된 성찰과 실천을 통해 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예술의 창의성과 독립성, 주체적인 특징들이 자기 에 반영되어 창의적이고 독립적이며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한 명의 시인(예술가)’이 될 수도 한 명의 시민(주체적 자기 삶을 사는)’이 될 수도 있는 길에 예술의 중요함이 있고 예술가의 태도가 있다. 조금 보태서 말하면 예술과 삶의 지난한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적 삶을 살아내는 무명씨의 실천과 성찰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우린 인재라고 호명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진()한 영향력(선한 영향력의 오염도가 나를 불편하게 해서 대신 진한 영향력이라고 함)을 가진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구태여 문화도시 안에서의 인재 양성은 이런 시민의 진실의 힘에 동조하고 박수를 보내는 과정이다. 문화적 삶과 예술을 정의한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예술, 그리고 삶의 근본적 질문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으로써, 주체적 시민인 자신의 삶과 사고, 실천의 영역에 전환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전환에서 예술의 다양한 진정성의 통로가 시작되는 것이며, 우리는 그 통로를 지나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결국 문화적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예술과 문화영역에서, 또 지역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는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유리하지는 않다. 말하자면 지역과 사회, 예술과 문화의 지평을 해석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갖추고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함으로써 직접 실행할 수 있는 실천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면 족하다.

 

언러닝(Unlearning)

문화와 예술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박제처럼 작품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고유성 속에서 n개의 다양함으로 존재한다. 이 다양한 삶의 고유성은 독립적인 성찰을 이룬 경험과 수행의 측면에서 예술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를 딛고 깨달은 스스로의 지혜이다. 문화는 이런 지혜의 총체를 의미한다.

 

나가면서

여기까지 떠들고 나니 문화도시 안에서 문화예술-인재양성이란 말이 얼마나 무색한지, 얼마나 부끄러운지, 우리는 이 말을 대신할 수많은 가치의 언어들을 이미 가졌는지가 새삼스럽다. 그러니 우리는 문화도시를 떼어내고 문화적 삶을 사는 여기에서, 문화예술을 떼어내고 삶의 지혜로운 다양한 고유성을, 인재양성을 떼어내고 그 차이들이 만나서 서로를 포용하고 환대하고 건강하게 충돌하는 관계들에 주목할 일이다.

 

거창하고 뻔뻔한 간절함을 거두고 말이다.

김월식 무늬만 커뮤니티 디렉터

고도의 압축 성장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을 함께한 커뮤니티의 전체주의적 목적성을 경계하며, 발전과 성장의 동력이자 조력자로써의 개인의 가치에 주목하는 작업을 해왔다. 2010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는 예술보다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삶에서 발생되는 의미들을 존중하며 이를 공유하고 나누는 프로젝트인 ‘무늬만 커뮤니티'를 진행하였고 그 외 2011 생활문화재생레지던시 ’인계시장프로젝트’, 2012 중증 장애인과의 협업극 ‘총체적난 극’, 2014 동시대 아시아 예술가들의 커뮤니티에 대한 연구 ’cafe in asia’와 2016 시흥시의 ‘모두를 위한 대안적 질문 A3레지던시’를 기획하였다. 2018년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외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 하였다, 현재 무늬만 커뮤니티의 디렉터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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