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영도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진순여 통장님 인터뷰

진순여 통장님

본문



1363e0c5d768e0bf25d170ee2a1744ea_1625493687_497.jpg
▲ 진순여 통장님 
 


난 여기서 나고 지금까지 68년 동안 살았어. 어디 가도 못해.”


어릴 때 흰여울 마을 모습은 어땠나요?

아주 조용했고 이웃이 다 가족 같았던 마을이었어. 이름만 불러도 누군지 다 알고 서로 집에 와서 같이 밥도 먹고 진짜 살기 좋은 조용한 동네였지. 옆집 아이랑 머리카락 잡고 싸워도 다음날 다시 만나서 또 놀고 그랬어. 그리고 집 옆에 자그마한 (금성교회) 예배당에 가기도 했는데 그 예배당이 너무나 생각나. 예배당에 가서 새벽기도도 하고 빵도 얻어먹고 여름 되면 더우니깐 예배당 청마루로 가서 공부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다 뜯겼잖아. 새로 짓는다고 건물을 다 허물었는데 참 아쉬워. 높게 세웠다고 지금 신도들이 많아졌나? 신도들 중에는 패가 갈라져서 나간 사람도 많아. 시끄러우니 다 나가는 거야. 조그맣게 초등부, 중등부, 무슨 부 이렇게 모이면 얼마나 예뻐. 본당에서는 예배보고. 그렇게 예쁜 예배당을 한날한시에 뜯어 버렸으니... 그 예배당이 좋아서 보러 온 관광객들도 많았어. 계속 놔뒀으면 완전 문화재같이 되었을 텐데... 난 어릴 때 그 예배당이 너무 좋았고 지금도 참 많이 생각이 나.

 

어릴 때 나는 진짜 우리 동네만 있는 줄 알았어. 물이 얼마나 좋아. 아침에 밥 해 먹고 바닷가 내려가면 저녁 반찬 해오는데 안 좋을 수가 있어? 참게만 해도 잡아 와서 볶아 먹는데 파래, 김 다 있지. 잡아 오고 뜯어오고 그러다가 저기 밑에 반도보라아파트 지으면서 오물이 많아졌어. 물이 오염되면서 참 먹을 것이 많았는데 저 마을 끝까지 뿌옇게 가득 떠 내려와서 안 먹게 되었어지금은 그나마 다시 물이 좋아져서 다행이지.


8887aae554e3a21a1ebc59a767ccf02e_1625643571_921.jpg
▲ 진순여 통장님이 좋아하는 해초 

 

옛날에는 마을에 담이 없었어. 동네에 누가 사는지 다 알고. 우리 집 앞에 바닷가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해초랑 조개들 따와서 먹곤 했지. 우리 집이 팔 남매에다가 엄마랑 아버지가 얼마나 사람이 좋은지 동네 사람들 다 불러서 같이 먹고 했어. 낮에 바다에 가서 바위에 붙어있는 담치나 조개 같은 것들 다 긁어 와서 저녁 되면 동네 처녀, 총각 우리 집에 다 모여 앉아서 삶아서 다 나눠 먹고 했거든. 우리 집은 늘 잔칫집이었어. 당시에는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우리 집에 누가 밥 먹으러 오면 우리 아버지가 그냥 안주고 무조건 김치 하나라도 상을 펴서 주시곤 했어. 지금 내가 통장도 하고 마을 공동체 사업도 하는 건 그때 우리 가족이며 형제들이 그렇게 어울려 사는 걸 보고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해. 일이란 게 서로 질투하고 하면 못하거든.

 

통장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어요?

우리 아저씨가 65세 때인데 그 나이가 되면 퇴직이거든, 퇴직 전 우리 아저씨가 60대 때부터 통장이었어. 마을에 사는 사람들 누구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까지 다 알았는데 그때 통장 월급이 20만 원이었어. 그것 때문에 우리 아저씨가 다른 일을 안 해요. 놀던 사람이 되어서. 나는 장사도 안되고 아쉬워 죽겠는데 그 20만 원 믿고 돈벌이를 안 하는 거지. 우리 아저씨가 좀 한량이야. 그래서 내가 동네일 다 해 줄 테니 제발 돈 좀 벌어오라고 해서 일 보내고 우리 아저씨 대신 통장을 맡았어. 마을회의 있으면 놀 때는 아저씨가 가고 일할 때는 내가 갔지. 우리 둘 다 동네를 훤히 다 아니깐. 그게 2013년쯤이니까 통장 한 지 7~8년 되었네. 우리 아저씨가 70에 돌아가셨는데 그러면서 내 이름으로 통장이 된 거고.

 

통장 일 힘들지는 않으세요?

뭐가 힘들어. 다 알고 하는 건데.


8887aae554e3a21a1ebc59a767ccf02e_1625639360_707.jpg
▲ 흰여울마을  

 

계속 흰여울마을에 계셨어요? 떠나신 적은 없으셨나요?

너무 변화가 없는 동네라서 이사 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지. 결국 못 갔지만, 중간에 딱 9개월 정도 기장에 살았던 적은 있었어. 그때 내가 우유 판매를 했거든. 우리 아저씨 놀고 있을 때였어.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니 아버지 노릇 좀 하라고 내가 가게를 하나 내줬지. 토큰이랑 회수권도 팔고 담배랑 초콜릿도 파는 가게였어. 그때 라면도 팔았는데 가격이 300원이었거든. 라면 15개만 팔아도 우유 파는 거보다 낫겠다 싶어서 내가 그 가게 뒤에 분식집을 냈지. 골목 안에 있어서 이름이 골목 안 분식집이었어. 지금 테크노고등학교 근처야. 애들은 다락방에 재우고 1층에 방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 살면서 낮에는 그 방에서 손님도 받고. 그때 하루에 라면을 2~300그릇씩 팔았어. 학생들이 진짜 많이 들락날락했지. 아저씨 가게에서도 초콜릿이나 회수권 같은 걸 파니깐 아저씨 인기도 엄청 많았고.

 

우리 시아버지가 옆에 있는 고등학교에 소사로 있었는데, 학생들이랑 선생들도 다 알아서 우리 가게에는 나쁜 애들이 못 왔어.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축제 준비한다고 우리 가게 와서 담배 피우고 그러면 내가 막 쫓아냈거든. 선생님들도 자주 오니깐 우리 가게를 인정해줬어. 그 분식집을 10년 하다가 기장에서 아구찜 장사하는 언니 식당에 일하러 간 거야. 그런데 우리 아저씨가 여기 흰여울마을을 못 잊더라고. 어릴 때부터 살았던 동네고 친구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 나도 영도 가는 해운대 길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어. 그래서 9개월 만에 다시 영도로 돌아왔지. 돌아와서는 아구찜도 팔고, 복국 장사도 하고, 된장찌개도 팔고 나중에는 치킨집도 하고 그렇게 여러 일을 하면서 보냈어.


8887aae554e3a21a1ebc59a767ccf02e_1625643642_0926.jpg
▲ 진순여 통장님이 찍은 해무

 

예전 흰여울마을의 모습은 지금과 같았어요?

지금 마을 위쪽 길이 예전엔 넓은 땅이었어. 그 땅이 다 무너져서 지금의 흰여울 마을이 생긴 거지. 사하라 태풍 때도 무너졌고. 이 길이 흙이랑 돌이 섞여 있어서 물만 들어가면 허물어져. 그렇게 다 무너지고 지금 모양이 되었지. 희한하게 길이 만들어졌어. 그때는 위험한 낭떠러지였고 그 밑엔 다 술집들이었거든. 사하라 태풍 때 밑에 술집들 다 부서졌지. 지금이야 지붕도 벽도 탄탄하게 만들었지만, 그때는 지붕도 슬레이트고 돌담 집이고 하니 수시로 날아가고 무너졌지. 이 동네 집들 지붕이 낮은 이유도 비바람이 잦으니깐 낮게 만든 거야. 여기 밀수하는 배도 많이 왔어. 한번은 뱀 밀수를 하러 왔다가 앞바다에 뱀을 다 버려서 그 뱀들이 다 마을로 올라온 일도 있었고 간첩이 올라온 적도 있었어. 요 바로 앞에 나무 있는 집에 간첩이 들어가서 인질 잡고 그런 일도 있었지.

 

마을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재미있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생활문화공동체마을 사업을 하던 초창기가 재밌었어. 국밥데이(흰여울마을 중앙에서 시락국밥을 말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공연, 영화 상영 등이 진행됐던 마을 사업)도 하고 내가 막 생활문화공동체마을 활동하면서 주민들 참여시키려고 이해시키고 달래고 할 때. 그렇게 열심히 했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 마을 활동 2년 차에 전국 마을 활동가들이 모였는데 내가 발표를 하니 충북에서 온 어떤 사람이 마을 사업하려는 데 사람이 너무 안 모인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들어보니 뭐 동장, 지점장, 선생님 등 높은 사람만 찾아다녔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니, 생활문화공동체라면서 그런 사람은 왜 찾아갑니까? 마을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마을 사람들하고 어울려야지요. 밥상 하나를 차려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서 먹어야 하는 겁니다.” 하면서 내 사례를 이야기해줬어. 나는 진짜 새마을운동 하는 느낌으로 활동했어. 우리 동네는 일단 청소부터 하자고 시작했고 먹을 게 있어야 사람이 모이는 거니까 주민들을 위해서 국밥데이도 열고... 그렇게 청소도 하고 의논도 하면서 이끌어나갔지.


8887aae554e3a21a1ebc59a767ccf02e_1625640274_0721.jpg
▲ 흰여울마을 

 

계속 흰여울 마을에 계시고 싶으세요?

그럼! 있어야지. 내가 어디로 갈 거고? 다들 집값 올라서 좋겠다, 땅값 올라서 좋겠다 하지만 그건 내가 팔고 어디로 갈 때 이야기지. 지금은 세금만 내는데. (웃음)

 

흰여울 마을을 한마디로 정의 하신다면?

너무 좋은데 성질나는 마을.’ 마을이 많이 변해서 속상해. 화딱질이 나. 지금도 카페든 뭐든 우리 마을에 오는 것도 좋고 잘하는 것도 좋은데 주민들한테 피해만 안 주면 좋겠어. 돈 많이 벌어가도 좋은데 주민들 피해만 주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 지금 흰여울마을에 루프탑인지 뭔지 옥상 이용해서 뭘 하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사실 너무 시끄럽고 주민들이 불편해. 한번은 새벽 2시까지 하도 떠들어서 내가 나가서 이야기한 적도 있어. 저 위에 카페 짓는다고 공사하다가 길도 날아갔잖아. 구청에서는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자연재해가 아니야. 이틀 전에 카페에서 공청회 한다기에 갔는데 이런 얘기할 기회를 안 주더라고. 구청, 시의원, 구의원, 또 마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주민들 등등 다 모여서 불편한 점도 이야기하고 그런 자리라고 해서 갔는데 제대로 이야기도 못 했어. 솔직히 카페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주민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주민들 불편하게 하면 안 되지. 몇 년 사이에 이 마을이 너무 변했어. 실내에서야 뭔 짓을 해도 좋은데 옥상에서는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



진순여 통장님

바다 옆에 살면서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는 흰여울 마을 통장 진순여입니다.
#내가좋아하는 #영도 #바다 #멍게

주소.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로 27번길 8-8, 2층 영도문화도시센터 전화.051-418-1863 팩스.051-418-1864
메일.ydartcity@daum.net
Copyright © 다리너머영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