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영도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곳 영도에서.

한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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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성 님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동네이자 나만의 공간이 있다.

어릴 적 늦은 시간 초저녁까지 놀다 보면 들리는 뱃고동 소리, 저녁쯤 솔솔 날아오는 고등어구이 냄새, 가족들과 외식한 후에는 항상 정해진 루틴처럼 한 바퀴 돌고 오는 태종대, 할머니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면 들리는 깡깡이 소리.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과 나의 삶이었다. 이곳 영도에서.

 

어렴풋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본다.

어두웠고 기름 냄새랑 바닷가의 짠 내가 함께 느껴졌던 아빠의 사무실.

매년 4월과 9, 12월이면 아빠의 사무실 입구는 장갑부터 트리오 등 다양한 물품들이 성인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들어갈 공간도 없어 꽃게처럼 옆으로 걸어 들어간 적도 있었다.

 

화려하고 멋진 화이트컬러의 직장과 다르게 아빠의 사무실은 물건이 잔뜩 쌓인 공간을 지나 끝에 보이는 작은 공간에 있었다. 아빠도 나처럼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도 토박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또한 영도에서 선박 관련 일에 종사하셨다.

 

할아버지는 큰 어선을 이끄는 선장이셨고 할머니는 그 선주의 딸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마린보이와 엄지공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업과 관련된 일을 하시면서 아빠도 그 전선을 이어 트롤어선에 들어가는 용품들을 공급하는 선박용품 납품업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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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대평동 깡깡이 마을

 

아빠의 이야기와 아빠가 해왔던 모든 일을 깊숙이 들여다본 계기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였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아빠와의 이별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간 아빠의 사업장은 아빠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계속 돌아가야만 했다. 그때가 20104. 가장 바쁜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빠가 하시던 일을 엄마와 함께 이어 받아 하게 되었다.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 주어진 그닥 우리가 원했던 반짝이는 멋짐이 없었던 그 일이 너무 싫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는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이 일은 나의 모든 삶을 지탱해주고 내가 더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영도라는 곳이 외부인들에게는 멀게 느껴지고 억세게 느껴진다고 한다.

내가 아빠를 생각했던 부분도 비슷했다. 아빠가 멀게 느껴지고 억세게 느껴졌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와 보지 않으면 따뜻함과 순박함을 볼 수 없다.

 

영도주민들에게는 영도가 편안하고 포근한 삶의 터전이자 자리이다.

점점 줄어드는 어업, 줄어드는 청년 인구로 내부적 활기를 잃은 것도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영도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의 커뮤니티와 끈끈한 애정들로 활기차게 돌아가는 곳이다. 이곳 영도에서.

한지성

Green Lover_ GreenJI : 한지성
초록을 좋아합니다. 색깔도 좋아하고 초록이 무성한 산과 들을 좋아합니다.
저 자신을 하나의 프레임에 넣는 걸 싫어합니다. 지속적인 고민들은 함께하지만 그 고민의 시작은 내게 행복한 삶은 뭘까? 라는 고민입니다.
현재는 uxdot이라는 경험디자인 스튜디오의 서비스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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