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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대평 영도

김동진 통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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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 통장님 


안녕하세요. 김동진 통장님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도가 아닌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난,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김동진입니다. 저는 차남이고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누구를 시기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예와 수석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지요. 적십자봉사단체 남항동 회장직과 통장 직무수행을 열심히 하고 있고 서산대사 답설가 글귀를 새기면서 대평동마을회를 위하여 당당하고 폼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곳 대평동 깡깡이 마을엔 언제부터 살게 되셨나요?

1979년에 대평동에 이사 와서 현재까지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오신 부모님께선 돌아가셨고 1년에 4번 정도 고향에 가서 흙냄새를 맡고 부모님 산소에 인사하고 옵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기술이 부족하여 시행착오가 많았지요. 옛날에 외양선 배 손님, 다방 아가씨 등 손님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가끔 생각도 나지요. 깡깡이 예술마을이 지금은 인구가 감소해서 다시 활성화가 되기를 바라고 있고, 문화도시 사업이 잘되어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좋겠습니다.

 

결혼하시고 지금까지 평생 이곳에 계셨습니다. 마을을 떠나고 싶으신 적은 없으셨나요?

1987년에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고 진짜로 열심히 살아왔지요. 큰아들은 결혼하여 충주 아산 삼성전자에서 며느리하고 직장생활하고 있고, 작은아들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평동 마을이 참 좋은데요, 집사람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가서 정원도 꾸미고 싶고 꽃도 심고 차 한 잔 놓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합니다. 저는 돈이 없어 집사람 소원을 들어줄 수 없어 미안하네요.

 

영도의 깡깡이 마을과 관련하여 마을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모두들 김동진 통장님을 찾습니다. 그만큼 김동진 통장님이 깡깡이 마을을 잘 알고 사랑한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다는 의미인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깡깡이 마을을 사랑하시게 된 것인가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도다리 축제 기간 동안 영도문화원 김두진 국장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처음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관내 통장 수행 중에 마을회 대의원과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마을재산 형성과정을 마을 유지분 어르신들께서 물려주셨고 합심하여 마을재산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감동해서 그때부터 마을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기록으로 남기려고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지요. 마을해설사 교육부터 원도심 교육까지 참석하여 마을 역사도 공부하고 주민 속으로 들어가 물어보기도 하고 시간 나는 대로 현장을 답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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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해설 중인 모습 

 

적산가옥 상량문을 구입해서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구하게 되신 건가요?

대평동 인구 중 일본사람이 30% 정도 된다는 교육을 받았고 적산가옥 목조건물에 우리나라 전통처럼 상량문 글씨가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큰 공장 적산가옥 하나가 철거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나무는 다 가져가고 없어서 철거업자 사장님께 혹시 상량문 같은 것이 있냐고 문의하니까 모른다고 하여 꼭 일본 상량문을 찾아보리라 생각하고 목조건물이 철거된다고 하면 무조건 가서 보기도 했지요


마침내 19통 관내 적산가옥이었던 큰 공장을 철거하고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대들보가 있었고 찬찬히 살펴보니 상량문이 있었습니다. 적산가옥 상량문 글씨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두 눈에 이슬이 맺혔어요. 폰으로 현장 사진을 20장 정도 찍어오면서 그날은 종일 기뻤습니다. 철거업자 사장님께 상량문 글씨가 손상되지 않게 떼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장담은 못 한다고 하여 제가 술값을 조금 드리겠다고, 또 영도구문화원에 기증한다고 말씀드리고 제 명함을 주고 왔습니다. 일주일 후에 연락이 와서 가보니 상량문은 보여주지 않고 차량에 넣어둔 채 제가 5만 원 드리겠다고 하니까 20만 원을 달라고 하기에 사장님께서 좋은 일이 있고 복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고 10만 원을 드리고 제가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김동진 통장님께서 하시는 이 세탁소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저는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지만, 경영철학은 정직입니다. 제가 고집이 있는데요. 오점이 제거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 옷은 무조건 2, 3번 세탁을 하고 봅니다. 그래도 제거되지 않으면 불편한 마음으로 손님에게 드리는데요.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너무 미안하고 손님께서 화를 낸 적도 가끔은 있었어요. 옷을 한 번만 하면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두 번 세 번 하고 있지요. 일이 많아서 집사람에게는 미안하지요. 손님들께서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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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 통장님이 운영하시는 세탁소 

 

본업 말고 마을해설사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해설사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마을해설사는 깡깡이예술마을에 찾아오시는 손님에게 일제강점기 때부터의 마을 역사와 마을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제 수식어는 해설사보다는 대평동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마을을 찾는 분들과 마을 자랑과 역사를 조금이나마 행복하고 재미나게 소통하고 가슴 속에 여운을 담고 가시라고 마을 이야기를 알리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니까 마을 역사를 차근차근 지도 위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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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해설 중인 모습  

 

앞으로 깡깡이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마을재산을 물려주신 선대 어른들에게 풍마우세(風磨雨洗)’, 바람에 갈리며 힘겹게 마을재산을 형성해주신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견리사의(見利思義)’, 재산을 취함에 있어 합당한지 생각하라는 말씀이 있어 대평동 마을 총무로서 공정과 상식이 통하게 주민들에게 마을의 힘이 고루고루 돌아가게 하는 것, 그리고 주민이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게 하는 것이 제 임무라서 그 임무를 잘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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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하고 있는 봉사대 

 

마무리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제 세탁소를 통해서 손님들께서 저를 먹여 살려 주셨으니, 저도 최대한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게 저의 소망입니다. 항상 나를 뒤돌아보면서 나를 반성하고,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 착한 일을 계속하면 복이 자신 뿐 아니라 대대로 이어진다는 뜻이라는 글귀를 새기면서 봉사하고 세상을 배우면서 멋진 삶을 위하여 파이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동진 통장님

대평동을 정말로 사랑하는 세탁소 경영자이자 대평동 마을 총무. 깡깡이 마을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소.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로 27번길 8-8, 2층 영도문화도시센터 전화.051-418-1863 팩스.051-418-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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