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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조화가 이루어낸 조선의 민간정원을 찾아서

커뮤니티사업팀 이상명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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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명 님 


영도문화도시센터는 문화정원벨트라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영도의 생태적 자원을 주민들이 공감하고 함께 즐기는 문화로 연결하는 문화정원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그중에서도 <주제정원> 프로젝트는 영도 구석구석에 소중한 보물처럼 숨어있는 장소를 지역주민과 함께 발굴하여 자연환경에 문화예술 콘텐츠를 더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가꾸는 프로젝트이다. 생태에 대한 관심이 마구 샘솟고 있는 시점에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고, 때마침 지인의 초대로 이왕지사 공부하는 셈 치고 예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본 조선 시대의 민간정원 답사를 다녀왔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오롯이 느껴본 조선의 민간정원 답사를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지난 82() 오전 4, 일출이 시작되기도 전 이른 아침. 세수로 잠을 깨우고 수학여행을 기다렸던 학생 때처럼, 한껏 흥분된 상태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낮이 길어진 여름이라 그런지 일출도 빨라져 시야가 훤하니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동네의 낯선 모습들이 보였다.

 

오전 5시에 출발해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경남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위치한 무기연당(舞沂蓮塘)이다. 무기리 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주 씨 고가에 딸린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1700년대 영조 4(1728)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국담 주재성의 생가이자 가문의 종가(宗家)가 된 옛집이다. 주재성 선생은 큰 공을 세운 대가로 여러 관직을 권유받았으나 세 번이나 사양하고, 후진 양성과 학문에 전념하며 끝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선비의 표본이 되었다고 한다. 뒤로 보이는 병풍처럼 드리워진 높고 낮은 산에 둘러싸인 무기연당이 산안개와 함께 어우러져 태어나 처음으로 주의 깊게 들여다본 조선의 민간정원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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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연당의 전경


무기연당을 나와 함안에 있는 또 다른 문화재로 지역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무진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함안의 무진정으로 향했다. 무진정은 조선 중종 37(1542) 무진 조삼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직접 지은 정자로, 선생의 호를 따 무진정(無盡亭)이라고 명명하였다. 정자의 기둥엔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 정자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케 하듯 멋들어진 초목과 뱃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연못이 인상적이었다. 매년 4월에 열리는 함안군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낙화놀이 또한 이곳 무진정에서 개최된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황홀한 불꽃놀이인 낙화놀이를 보러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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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정 입구에서 바라본 배롱나무와 연못의 전경


함안 읍내 장터에 들러 소고기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차에 올라 전라남도 구례로 향했다.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도보로 오가며 구경할 수 있는 운조루(雲鳥樓) 곡전재(穀田齋) 고택 그리고 마산면에 있는 지금은 TV 프로그램 윤스테이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쌍산재(雙山齋)를 차례로 탐방했다.


전날 시원스레 비가 내려서인지 운조루 고택 입구를 휘돌아 흐르는 개천엔 물이 가득했다. 개천을 지나 운조루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내가 봐왔던 한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다가왔다. 근대에 지어져 나무 뼈대와 기와만 얹어놓은 겉모습만 한옥인 건물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던 점에서 운조루는 존재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원 구석구석에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그냥 심어진 게 없을 정도로 고택과 잘 어우러졌다. 운조루를 천천히 둘러보다 행랑채 안 곡식을 보관하는 나무로 된 독()을 볼 수 있었는데, 가난한 이웃에게 끼니를 거르지 않고 언제라도 쌀을 빼서 밥을 지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운조루의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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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 마당에 자리 잡은 위석류(좌)와 운조루(우)


운조루를 나와 조선 후기 때 부농의 민가였던 곡전재 고택도 둘러보았다. 같은 동네에 있어, 구례에 온 김에 방문했다. 지금은 한옥 민박을 겸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높은 돌담이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집안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집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옛 골동품들 전시도 볼 수 있었다. 갖가지 꽃과 풀이 오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기 충분했다.

 

TV 예능프로그램인 윤스테이촬영지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찾는 쌍산재도 방문했다. 방송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전통 정원을 품은 고택이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운조루와 곡전재가 위치한 곳에서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곳에 쌍산재가 있었는데, 평일 낮인데도 많은 관람객이 사회적거리두기를 준수하면서 공간을 둘러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입장료에 포함된 찻값 덕분에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손에 쥐고 쌍산재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입구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규모의 공간들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모습을 나타냈다. 작은 산속에 둘러싸인 마을을 보는 느낌이 들었을 만큼 한쪽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오고 또 다른 쪽으론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높다란 왕대밭을 지나니, 마치 넓은 초지를 연상케 하는 잔디밭이 펼쳐졌고 경암당, 서당채 등 큰 건물들이 뒤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잔디밭이라는 조금 조선 민간정원에 어울리지 않는 조경을 제외하고는 자연을 벗 삼아 오감으로 정취를 느꼈을 옛 선조들의 생활사가 주위 풍경과 함께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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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산재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안채와 사랑채(좌) 대밭 뒤로 경암당(우)
 

구례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석쇠불고기 집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장대비가 쏟아지기 전 마지막 방문지인 소쇄원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방문해 보고 싶었던 장소였기도 했고, 조선의 민간정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처음 경험해 보는 답사 일정 중에 포함된 곳이라 더욱 마음이 설렜다.

 

소쇄원은 우리나라 전통 정원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던 터라 숲속의 상쾌한 냄새와 빗물을 머금은 흙냄새가 소쇄원의 비경과 어우러져 넋을 놓고 초입에서부터 심취해버렸다. 초입 왕대밭 숲길을 지나면 펼쳐지는 광경이 계곡을 사이로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인 대봉대가 있고, 아래로 광풍각과 위로 제월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를 피하려고 대봉대에 앉아 내려다본 계곡과 광풍각의 모습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정취를 선사했다. 소쇄원은 500년 전 조선의 소쇄처사 양산보가 건물 하나, 나무와 풀, 그리고 돌멩이 하나에도 어떠한 의미들을 붙여 만든 조선 최고의 원림(園林)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곳이다. 자연과 인간이 만든 원림을 구별 지은 듯 짓지 아니한 듯 조성해 놓은 곳곳을 둘러보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면서 생활한 선조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문화재 혹은 시골의 전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공간에 대한 숨어있는 역사적 이야기를 듣고, 15대를 거쳐 내려오면서도 자연과 동화돼 잘 이뤄진 민간정원이라 생각되니 눈길 한 번, 발길도 한 번 더 머물게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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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 초입 대나무 숲길(좌), 대봉대 전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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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 광풍각의 전경  

이번 답사를 진행하면서 어디를 가든 아름답게 핀 배롱나무(목백일홍)를 볼 수 있었는데, 명옥헌에 꼭 들러 흐드러지게 핀 군락을 보고 싶어 찾게 되었다. 명옥헌을 향하는 마을마다 이런저런 사연을 담은 듯한 벽화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듯 맞이하고 있었다. 마지막 작은 언덕을 넘을 때쯤 눈앞에 자연이 만든 압권이 펼쳐졌다. 명옥헌엔 연붉은빛의 꽃망울을 피운 군락 이룬 배롱나무가 즐비했고, 또 배롱나무를 돋보이게 해주기라도 하듯 눈이 시원해질 만큼의 초록의 커다란 연들도 꽃봉오리를 한껏 피워 올리고 있었다. 여름이라 더욱 귀한 꽃놀이를 이곳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도 명옥헌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는 경치에 취해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다르게 들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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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나무와 연꽃이 만발한 명옥헌의 전경


둘째 날 아침 숙소에서 제공한 정갈하게 차려진 남도식 아침을 먹고, 일행과 함께 보길도행 배편을 이용하기 위해 화흥포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평일 아침 시간이라 여객터미널은 한산했고, 10:50분 배편으로 보길도로 이어지는 동천항으로 출항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차를 타고 보길면에 위치한 윤선도의 원림인 세연정을 찾았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휴관령이 내려져 아쉽게 내부를 탐방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대표정원으로 꼽히는 세연정을 볼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두 번째 방문 예정지였던 곡수당과 낙서재로 발길을 돌렸다. 낙서재에 오르기 전 곡수당에 먼저 들렀는데, 낙서재 골짜기로부터 흐르는 물이 곡수당 인근까지 곡수를 이루며 연결돼 있었다. 곡수당 옆엔 연꽃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면서 관상할 수 있도록 폭이 깊은 상연지(上蓮池)가 있었고,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하연지(下蓮池)로 이어지게 조성돼 있었다. 멋들어지게 핀 연꽃이 있었으면 했지만, 연꽃을 대신해 수련들이 그 자릴 차지하고 있었고 곡수당 곳곳에 우리나라 자생의 야생화가 아닌 수입 품종의 들꽃이 인위적으로 심겨 있었다. 조선의 민간정원을 답사하러 왔지만 수입 초화류를 맞닥뜨리게 되어 내심 마음이 편칠 않았다.


산책로가 조성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산 윤선도 선생이 여생까지 살았던 장소인 낙서재가 나온다. 보길도 안에서도 가장 좋은 입지에 자리한 낙서재는 독서하고, 소요하고, 조용히 은둔하고자 했던 선비의 공간으로서 탁월한 공간이었다. 멀리 직선상으론 동천석실이 보였는데, 윤선도 선생이 한 칸짜리 정자를 짓고 시도 쓰고 차도 마셨던,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한 칸짜리 집을 지어 생활했다고 한다. 동천석실로부터 낙서재까지 도르래로 연결해 필요한 물건까지 날랐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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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수당(좌)과 낙서재(우)의 모습

마지막으로 둘러본 정원은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한 백운동(白雲洞) 원림이다. 월출산 옥판봉 자락 아래 소담스럽게 위치한 별서이다. 담양의 소쇄원, 완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컫는 곳이다. 조선 중기 때 처사 이담로가 은거했던 곳이다. 또한 다산 정약용이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하산하다 하룻밤을 보낸 백운동의 경치를 잊지 못해 백운도를 그리게 하고, 12승사의 시를 지어 남겼다는 내용도 전해지는 곳이다. 백운동 원림은 울창한 동백 숲길을 따라 들어가 계곡을 지나면 나오게 되는데, 들어가는 입구 커다란 바위에 백운동이란 글자가 암각 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림 입구 옆으로 아홉 굽이치는 작은 물길이 있는데 잔을 띄워 시를 읊고 놀이를 하는 유상곡수인 조선시대 풍류를 즐긴 자리도 있었다. 백운동 원림 곳곳에 숨어있는 백운동 12경을 이야기하는 팻말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산수가 수려한 경승지에 자리해 상·하연지를 만들어 친수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자연물과 인공의 구조물들이 조화롭게 구성된 조선시대 원림의 원형을 관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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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동 원림 내의 모습


조선의 민간정원을 답사하면서 느낀 점은 사람들이 으레 찾는 하나의 명승지라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동화된 삶의 태도를 배울 기회가 되어 더욱 좋았다는 점이다. 또한 이번 답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을 만큼의 생태자원에 대한 관심과 보존 그리고 사람들의 아끼고 보살피는 태도가 얼마나 값지고 귀중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 영도의 생태적 자원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조금 더 문화적으로 고민하고 접근하는 문화정원 프로젝트로 가꾸어 나아가고자 한다. 조선의 민간정원 답사를 통해 품고 온 우리 선조들의 생태적 감수성과 이웃과 나누려 했던 베풂의 태도를 영도형 커뮤니티 가든의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한번 만나보려고 한다.

커뮤니티사업팀 이상명 크루

영도에 자리 잡은 자랑스러운 영도 청년이자 일상을 살아가는 일상기획자.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생태주의적 문화기획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식물집사 #순대에진심인편 #부캐는순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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