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녹서

문화도시와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울어진 땅, 영도

홍석진 미디어 아티스트

본문

7ce32888c8a0deb497b36278507badc2_1639558073_1356.jpg
▲ 홍석진 미디어 아티스트 


직업이 영상인 관계로 카메라를 들고 영도를 많이 걸었다. 어떤 특정한 장소나 대상을 촬영할 때는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만, 영도의 문화 또는 영도의 삶의 이미지를 포착해야 할 경우에는 무작정 영도를 걸어 다녀야 했다. 그렇기에 진리를 찾는 구도자처럼 또는 사냥감을 찾는 포수처럼 영도 구석구석을 많이 돌아다녔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풍경과는 달리 30cm의 보폭으로 걸어갈 때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영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영도의 땅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도시인들은 경사면을 걸을 일이 잘 없다. 현대의 도시는 경사를 다 깎아 평지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의 주된 생활무대는 평평해졌고 한 평지에서 다른 평지로 옮겨가기 위해 우리는 기울어진 땅 위를 잠깐 지나다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걸어 다닌 영도는 달랐다. 아직 경사면이 살아있고, 경유의 공간이 아닌 생활의 공간으로 기울어진 땅이 남아 있었다. 영도의 집들은 자연과 싸우지 않으며 봉래산 본연의 굴곡 위에 앉아 있고 주민들은 바다와 서로를 조망하며 기울어진 땅 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7ce32888c8a0deb497b36278507badc2_1639558194_5528.png
 
▲ 영도사진

 

영도의 경사지가 평지와 다른 것은 무엇보다도 풍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지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좌우로 시야가 막혀 있어 많은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경사지에서는 막혀 있던 시선이 한없이 뻗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영도에는 풍경 맛집이 많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주 좋은 일이지만 조망할 수 있는 풍경 속에는 더 큰 의미가 있는 듯하다. 경사면에서는 시야가 넓어져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그런 이유로 내 주위에 무엇이 그리고 누가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시야가 좁으면 나와 내 주위의 몇몇 사람들만 보이게 되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상관이 없는 타인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봉래산에서 보이는 풍경 속의 수많은 집과 골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나를 포함한 영도의 많은 사람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도 주민들은 얽히고설킨 좁은 골목들이지만 그 통로들이 나와 이웃을 이어주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기에 하나의 큰 공동체 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7ce32888c8a0deb497b36278507badc2_1639558239_5727.png
▲ 영도사진 

 

경사면은 시선을 뻗어 나가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점도 제시한다. 기울어진 땅에서는 수직으로 이동하면서 평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여러 가지 시점이 발생하게 된다. 똑같은 동네슈퍼라 하더라도 경사면 위에서 촬영할 때와 경사면 밑에서 올려다보면서 찍을 때 분명히 다르게 촬영된다. 경사지의 사람들은 하나의 사물도, 한 명의 사람도,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습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사면을 오르내리면서 알 수 있다. 영도주민들은 누군가를 올려다보고 또는 내려다보는 행위가 갖는 관습적인 의미를 떠나 단순히 다른 시점에서 한 사람을 바라볼 줄 알고, 그럼으로써 여러 가지 포인트 오브 뷰(POINT OF VIEW)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사면은 운동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평지에 놓인 공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경사면에 놓인 공은 구르기 마련이다. 섬이기에 당연히 가지고 있는 수변공간과 함께 봉래산의 역동적인 경사면이 있는 영도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기울어진 땅을 딛고 올라가는 힘찬 허벅지처럼, 밤새 경사면에 주차돼있는 자동차들의 견고한 브레이크처럼, 영도의 에너지는 충만하다. 봉래산의 굴곡과 영도의 골목들을 따라 요리조리 재미나게 굴러 내려가는 공의 궤적과 같이 현재 영도의 모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영도의 가능성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7ce32888c8a0deb497b36278507badc2_1639558252_3655.png
 
▲ 영도사진

홍석진 미디어 아티스트

움직이는 이미지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홍석진
좋아하는 것은 #바다 #일출 #언덕 #무용 #카메라

주소.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로 27번길 8-8, 2층 영도문화도시센터 전화.051-418-1863 팩스.051-418-1864
메일.ydartcity@daum.net
Copyright © 다리너머영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