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녹서

문화도시와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모든 건 밀면 한 그릇에서 시작됐다

그레이트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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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트 톰 


안녕하세요, 저는 영도 봉산마을에 위치한 작은 책방, ‘오늘의 양식을 공동 운영하는 톰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면 종종 어떤 분들은 어쩌다 이곳에 책방 열 생각을 하게 됐냐고 되묻곤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멋쩍게 웃으며 그게... 밀면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지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영도에 이사 온 후, 한동안 저는 곳곳을 다니며 맛집 탐방을 다녔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집 근처에 유명 밀면집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 저녁, 그 밀면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피크 타임을 피해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가게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나중에 듣기론 재료 소진으로 보통 3시쯤엔 영업이 끝난다고 하더군요. 허탈한 마음과 허기진 아랫배를 부여잡으며 터벅터벅 큰 길가로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른 다른 밥집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침 일단의 사람들이 반대편 골목길로 향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기에도 맛집이 있나 보다, 싶어 무작정 그 뒤를 쫓았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골목길 안쪽에는 정원이 잘 가꿔진 집 한 채가 조용히 서 있었어요. 참 놀랍고도 신기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거리에 맛집이 있고, 무미건조한 주택가 사이에 마치 작은 숲처럼 식물들이 풍성하게 자리 잡은 집이 있었으니까요. 골목골목마다 제 예상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나타나는 걸 보면서 영도에 대한 호기심도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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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전경 


정원이 아름다운 이 집은 조경학을 전공하신 박사님과 아내분이 함께 운영하는 리케이온이라는 카페였습니다. 사장님은 카페를 찾는 분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정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얼떨결에 저도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봉산마을 회장님을 알게 되었지요. 당시 제가 봉산마을에 대해 아는 거라곤 빈집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 작가들이 입주했다는 소식뿐이어서 회장님을 처음 보았을 때, 다음에도 비슷한 기회가 생기면 저도 꼭 신청해보고 싶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인사치레 성 멘트였는데 바로 그날 저녁부터 회장님께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빈집이 있으니 보러 오라는 그 말을 차마 전화상으로 거절할 수 없어서 다음 날 봉산마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책방 자리를 소개받았지요. 정말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다이내믹한 영도 라이프가 아닌가요.

 

다시 책방을 열다

 

저는 2017년 즈음, 대연동에서 오늘의 산책이라는 책방을 운영한 바 있습니다. 그때는 10년간 해오던 게임개발자 일을 그만둔 직후여서, 책방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룰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 꿈이 산산 조각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요. 문득 돌아보니, 저는 자립이 아니라 고립이 되어 있더군요. 책방을 정리하고 영도로 이사를 온 후에 급하게 다시 책방 문을 열지 못한 이유기도 합니다.


만약 다시 시작한다면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책방 공간을 구하게 되면서 저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두 사람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공유오피스를 이용하면서 알게 된 디자이너 황가닥 님과, 마케터 찐 님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흔쾌히 합류 의사를 밝혀주셨고, 그렇게 세 사람은 겨울의 초입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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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내부 


이후 두 달여간 우리는 수시로 의견을 나누며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함께 도모하면 좋을지에 대해 열띤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서로의 관심사도, 취향도, 심지어 하고 싶은 일도 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책방의 형태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의 다양성을 오롯이 담을 방법에 대해 더 고민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월이백 스튜디오입니다.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혼자가 아닌 다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최소한 월 이백만 원은 벌자! 라는 포부를 스튜디오 이름 속에 담은 것이죠.

 

스튜디오의 운영은 공동 출자와 공동 분배를 기본으로 하고, 명목상 필요한 대표는 사다리 타기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첫 프로젝트로 책방을 오픈하기로 했습니다. 호기롭게 오픈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적었지만, 사실 책방의 이름과 컨셉을 정하는 일은 고단한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최종 로고를 만들던 단계에서 모든 것이 바뀌기도 했으니까요. ‘오늘의 양식이란 이름은 맛집에서 메뉴를 고를 때처럼 책방에 와서 책을 둘러볼 때의 기분도 설렘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했습니다. 흔히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니까, ‘몸과 마음의 허기짐을 채우는 공간이란 모토를 내세웠고, 실제로 몸의 허기짐을 달랠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어 팔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F&B 업무를 담당할 쿠미 님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쿠미 님 역시 정원아카데미 수업을 통해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였어요. 지역에서의 거점 공간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리케이온이 없었다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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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오픈 전야의 크루들 


202114일 첫 출근을 해서, 29일에 책방을 가오픈했습니다. 한 달여간 크루들은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가오픈 기간 동안 영도에서 알게 된 많은 분이 와주셨는데, 그것 역시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이곳저곳 여러 동네에서 살아봤지만, 이렇게 많은 친구를 사귄 것은 영도가 처음이었거든요. 영도의 매력에 다시 한번 빠져든 순간이었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기

 

책방이 자리한 봉산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고령의 어르신들입니다. 젊은이들이 타지로 떠나고 마을이 텅텅 비는 문제가 비단 봉산마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막상 마을에 들어와 체감해 보니 그 심각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봉산마을 주민들 역시 한때는 심각한 열패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청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셨다는 얘길 듣고 젊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피어올랐습니다. 일본의 후쿠이현이 전국 행복도 1위를 달성한 과정을 분석한 이토록 멋진 마을이란 책을 보면, 마을 만들기에 성공하려면 젊은이와 외지인 그리고 괴짜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희는 괴짜까지는 아니지만(이 자리는 현재 공석입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젊은이와 외지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싶습니다.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분들이 카페와 점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가 나서서 패키지를 상품성 있게 디자인한다든지, 실질적으로 공간 운영을 서포트한다든지, 하물며 화단에 물을 주는 일이라도 나서서 한다면 어떨까요? 분명 책방 운영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공동체와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소중한 느낌을 갖도록 해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디어 고립이란 감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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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블라인드북과 책갈피


이제 앞으로 생존'이라는 중요한 화두가 남아 있습니다. 책방을 오픈하긴 했지만, 책만 팔아서 먹고사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단순 계산을 해보니 1인당 월 이백만 원을 가져가기 위해선 하루에 책을 최소 60권 정도 팔아야 하더군요. 한 달에 60권 팔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죠. 생존을 위해 작더라도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영도스콘을 만든 것도, 블라인드북을 식빵 모양으로 포장한 것도 우리만의 것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게 콘텐츠가 쌓이고 쌓이면 1~2년 후에는 제법 괜찮은 책방으로 성장하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우린 버티고자 합니다.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혼자가 아닌 다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그레이트 톰

그레이트 톰(박재영)은,
게임개발자로 10년을 살았습니다. 4년간 책방지기로 살고 있습니다. 가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영도를 좋아합니다.
#게임 #책 #생산적 #기획자 #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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