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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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일기

오재민 무명일기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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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일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창작자들의 공간, 그리고 무명일기의 시작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던 20대 중반의 나는 졸업작품 준비를 위해 학교 목업실에서 2006년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3D 프린트가 대중화되기 전 목업(Mock-up)실은 다양한 재료를 자르고 붙이며 내가 디자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마법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인 그때였던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 대학을 졸업하고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그때의 꿈이 점점 사라져갈 무렵 창업의 길목에서 또 한 번 고민하게 되었고, 당시 관심이 많았던 식음료 분야와 디자인을 결합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명일기의 전신인 키친파이브를 만들게 되었다.

 

창업 초기 나에게는 여전히 대학 시절 목업실과 같은 작업실이 필요했고, 식음료 비즈니스를 함께 진행할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보수동책방골목에서 오래되고 낡은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4~5평의 작은 서점 두 곳이 자리하던 그곳은, 벽을 틔워 10여 평 남짓한 카페로 운영되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식당을 하기에도 버거운 작은 공간이었기에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쌓여있던 박스들 사이 지하 계단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점창고로 쓰였던 지하 공간은 카페로 운영되는 2년 동안 봉인되어 닫혀 있었고, 무언가 있을 것 같은 두려움과 긴장감 속에 조심히 내려가 보았다.

 

로컬푸드와 디자인의 만남

 

지하창고는 상상과는 다르게 아주 넓었고, 습하지 않았으며, 나름 쾌적했다. 그렇게 비밀의 공간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나의 첫 번째 브랜드 충무로를 시작하게 되었다. 항구도시의 로컬푸드인 충무김밥을 시그니처로 1층에서는 다양한 부산의 로컬푸드를 조리하여 서비스하였고, 비밀공간인 지하에서는 그것에 맞는 적절한 디자인을 연구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로컬푸드를 해석하는 것이 나의 첫 미션이었다. 실제 내가 충무김밥을 처음 먹어보았던 곳은 통영이 아닌 남포동 먹자골목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남포동 구경을 나와 처음 먹었던 충무김밥은 빨간 다라이(고무대야)에 수북이 담겨있던 섞박지, 어묵 무침과 함께 투박하게 내어졌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러한 로컬푸드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어찌 되었든 시그니처 메뉴의 이름이 충무김밥이었으니 브랜드<충무로>를 만들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로컬푸드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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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


하지만 원치 않는 변화를 맞이하기도 했다. 국내 첫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생한 2015년 봄, 거리에는 지금과 같은 적막감이 돌았고,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변화를 준비했다. 창업 준비 당시 접했던 존 파브르 감독의 독립영화 <셰프(국내 개봉명 아메리칸 셰프)>는 레스토랑 오너에게 메뉴 결정권을 뺏긴 셰프 칼 캐스퍼가 낡은 푸드트럭을 타고 미국 전역을 일주하며 음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삶을 그려가는 내용이다. 현재의 코로나19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불안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창업 초기 마주했던 영화를 떠올리며 불가능할지도 모를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름의 확신을 가진 채 두 번째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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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트럭 


정해지지 않은 다른 길을 가는 변화에 익숙한 나는 20155월 미국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낡은 푸드트럭 한 대를 발견하고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절차와 관련 법령 등을 공부하며 불가능할지 모를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수입차 관련 전문가들도 만류했던 그 차량은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운송비만 10,000불이 들었고, 국내에서 정식등록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뒷일은 하늘에 맡긴 채 미국에 있는 딜러를 수소문하여 계약을 시작하고 정확히 3달 뒤인 20158월 국내에 도착한 차량을 만날 수 있었고, 20161월 무사히 국내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푸드트럭 규제개혁을 통해 합법화된 영업을 진행할 수 있었기에 부산의 다양한 행사들과 연계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식·음료 문화의 변화를 함께 했다. 하지만 푸드트럭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반복되는 콘텐츠를 변화시킬 새로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또 다른 변화를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리너머영도

 

영도는 조부모님께서 피란 와 평생을 사셨던 곳이고, 머리가 복잡할 때면 다리 너머 영도를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2018년 늦은 봄에도 새로운 변화를 고민하며 정처 없이 영도를 탐험하고 있었다. 커다란 산업용 선박들 사이로 즐비한 봉래동 창고 군에서 운명처럼 대학 시절 목업실과도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으며 그렇게 처음 무명일기과 마주하게 되었다. 보수동책방골목의 매장, 푸드트럭, 푸드트럭 창고 등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그간의 과정들을 하나로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무명일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인근 수리조선소와 창고 군 근로자들 외에 아무도 다니지 않았던 봉래동의 낡은 창고에 작은 불빛을 밝히고 6개월간 밤낮없이 하나씩 공간을 손보기 시작했다. 1959년 근대항만창고로 쓰였던 이곳은 옛 건축 그대로 쓰임에 맞게 바뀌어 왔었고, 우리와 만날 당시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거친 철 구조물로 가득했다. 걱정 어린 관심으로 찾아오시는 인근 공업소 사장님들과 작은 기대감으로 응원해주었던 지인들은 끝이 보이지 않았던 준비과정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고, 2019년 봄이 되어서야 미완성의 완성으로 무명일기의 문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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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일기에서 진행한 공연 및 영도소반


그렇게 무명일기는 시작되었고 처음 마주했던 순간부터 2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화를 거듭하며 공간을 바꾸어 가고 있고, 외롭기만 했던 어두운 길 한가운데를 화사하게 비추는 무명일기의 가로등 불 앞으로 많은 사람이 다니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떨리는 데뷔 무대가 될 공연장으로, 누군가에게는 밤새워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으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과 하루를 함께 보내는 카페로, 무명일기는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어색함과 궁금함으로 찾아오던 처음과는 달리 익숙한 변화를 함께 즐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무명일기의 의미는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이름의 의미처럼 우리는 정해지지 않은 일상을 기록하는 곳이고, 무엇이든 원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하시라고 안내해 드린다. 그리고 포근한 온기를 전하며 소소한 것들을 통해 당신의 일상에 스며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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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일기 브랜드


오재민 무명일기 메이커

근대항만창고가 즐비한 부산 영도의 창고 군에 자리한 무명일기는 1950년대 지어진 낡은 창고를 리노베이션하여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생활문화에 기반한 유·무형의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정해지지 않은 일상의 기록을 보관하기 위한 브랜드 <무명일기>를 통해 당신을 위한 취향을 제안하고, 투박한 공간에 따듯한 햇살을 담아 오늘을 함께 공유합니다.
#로컬 #경험 #메이커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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