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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 안내하는 질문하지 않는 사회복지

배은석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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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은석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영도에 거주하는 중년 남성 1인 세대를 방문했다.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 완화를 위한 문화예술적 접근 전략을 모색하는 연구 차원이었고, 공무원과 지역주민이기도 한 문화예술가와 함께 주민참여자인터뷰를 진행했다. 전망 좋은 영도의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다세대 주택의 옥상에서 둘러앉아 진행된 인터뷰는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고 잘 마무리된 듯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인터뷰 과정이 불편했다는 예술가의 지적을 전해 들었다. 중년 남성인 대상자가 외부의 개입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어적 태도를 감안하더라도 언제 외로움을 느끼시냐는 연구자의 질문이 지나치게 집요하게 느껴졌다는 취지에서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사회복지재정과 인력을 빠른 속도로 확충해오고 있다. 그 수준이 충분한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고독사는 흔히 있는 일처럼 익숙해졌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겪는 문제는 그 특성이 더욱 다양해지고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정부는 기존의 양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접근성과 충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2014년 송파세모녀 사건의 핵심도 그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양적인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필요한 자원이 적절한 때에 전달되지 못한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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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Alex Boyd | Unsplash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때 전달하기 위해서는 접근성과 충분성 차원의 서비스 인프라 위에 관계중심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14년 사회보장급여법 제정을 통해 읍면동 단위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구성하도록 하여 지역주민이 협의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사각지대 발굴과 지역사회자원의 연계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아무래도 일상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역의 욕구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지역주민이 고립된 이들과의 관계성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복지통장’,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등 다양한 지역사회 복지전략에서 주민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러한 관계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동안 사회복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수요자, 즉 무엇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 수급의 요건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상화 해왔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정된 자원의 한계와 그 배분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들에게(혹은 우리 자신에게) 자격을 증명하라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된 지역사회복지의 주체이자 이웃으로서의 지역주민 역시 아직까지는 대체된질문자에 가깝다. 이런 전통적인 사회복지 접근방식에서 충분한 관계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지속적으로 서로의 계급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인간적인 관계가 풍성하게 일어날 만한 존재 그 자체로 서로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예술의 힘은 여기서 필요하다. 우리는 어릴 적 동네 또래들과 서로 호구조사 하면서 친해지지 않았다. 호구조사를 통해 친구를 거르지도 않았다. 흙이 깔린 놀이터에서 무슨 놀이를 할까, 무엇으로 놀까, 어떻게 놀까에 대한 오늘 이 자리에서의 소통만으로 충분히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놀이를 같이 한 친구가 이사 가게 되면 그것으로 슬펐지, 고급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서운한 마음이 달래지는 것은 아니었다. 문화예술 활동을 한낱 흙밭의 놀이로 치부하는 듯해 조심스럽지만, 서로가 존재로서 충분했던 그 역동은 지금의 문화예술활동이 가지는 힘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역동은 지금의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중추신경으로 살아있다.

 

사회복지에서도 최근 배분의 명분을 위한 (주로 경제적 기준에 따른) 계급화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취약성을 발견하기 어렵게 한다는 지적에 따라 인정(認定)의 정치’, ‘인정투쟁이라는 개념을 함께 논의하기도 한다. “인간은 원초적 관계에서 상호인정이 작동됨으로써 자신에 대한 신뢰를 얻게 되고 권리관계에서는 평등한 존재로 상호인정됨으로써 자기 존중감을 얻게 되며 사회적 관계에서는 개인의 성과나 업적이 상호인정됨으로써 자신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상호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인정투쟁, 249)”. 같은 책에서 예로 든 경제적으로 성공한 흑인 사업가가 월가에서 택시를 잡기 어려울 수 있다는 사례는 존재로서의 불인정이 또 다른 사회적 고립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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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 투쟁> 악셀 호네트 저, 사월의책 출판 

 

사회복지급여를 집행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달자나 질문을 업으로 하는 연구자는 여전히 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의 사회복지 패러다임 변화의 배경은 사회적 고립 등의 다양한 사회복지 문제를 질문으로만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질문하여 거르지 않는, 지역사회라는 놀이터에서 그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경험을 문화예술활동은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예술 차원의 시각을 통해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웃은 대상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고, 프로그램은 개입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무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배은석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작은 사회,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해야, 그 작은 공동체가 건강해야,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지역사회복지에 한 다리 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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