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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영도에 삽니다. 가만히, 그렇지만 반짝이면서.

서현선 진저티프로젝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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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선 진저티프로젝트 이사 


10 19일 아침 8 15

우연히 현우네 스크루 공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미팅 준비를 위해 들르려던 커피전문점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영도 거리를 헤매다 현우네 공장 근처를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 보니,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 불꽃을 튀기며 홀로 용접을 열중하고 있었다아무래도 뒤태가 현우같아 보이기에 문을 살짝 열고 그를 불러 보았다.

 

현우님! 현우님! 현우님! 현우님! 현우님! 현우님! 현우님!...”

용접에 열중해서였을까. 그 이른 시각 누군가 자기를 찾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워서였을까. 현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도통 듣지 못했다. 결국 두 팔을 흔들며 한참을 부르고 나서야 그는 우리를 발견하고 특유의 순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1년 만에, 그것도 이른 아침에 불쑥 찾아온 우리를 보고 현우는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단다.

 

극단 대표. 12년 차 배우. 스크루 공장 알바생.

현우는 우리가 작년에 인터뷰한 영도 청년 5명 중 하나였다. ‘나는 영도에 삽니다'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이 책을 만들면서 우리는 5명의 영도 청년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중에서도 현우와는 잊히지 않는 여러 겹의 만남과 대화가 있었다. 현우는 연극에 대한 꿈과 열정이 있는 배우이자 극단일터의 대표이면서도, 생계를 위해서 스크루 공장에서 용접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청년이었다. 우리는 그가 대표로 일하는 극단, 용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스크루 공장,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그의 일상을 엿보고 꽤나 긴 대화를 나눴다. 뿐만 아니라 그가 힘들 때면 오른다는 험악한 봉래산 등반 코스를 함께 오르며 그의 꿈과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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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에서 신현우 님

 

우리는 그를 마인드 미남이라 부른다

누군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돌아와서 그 인터뷰를 정리하다 보면, 뜻밖의 발견을 하곤 한다. 현우와의 인터뷰는 특히 그랬다. 투박하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부산 사투리를 현장에서 들었을 때는 평범한 듯 느껴졌던 그의 말들은 서울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펼쳐보면 유난히 단단하고 깊이가 있었다. 연극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꾸준히 걸으면서도 조급해지지 않고, 스크루 공장에서의 용접 일을 하면서도 성실함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을 현우의 인터뷰 기록을 읽으며 발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와 수다를 떨다가, 문득 우리는 그의 조용한 배려를 찾아내곤 했다. 등산 내내 티 내지 않으면서도 힘든 수고를 하고, 지칠 때 조용히 간식거리를 내밀고, 우리의 컨디션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배려했다는 것을 서울에 돌아와서야 깨닫곤 했다. 그리고 그런 현우의 태도는 단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12년이 넘게 연극을 해 오면서 동료들을 끊임없이 배려하며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습관 같았다. 작은 체구에 부산 사투리를 쓰는 현우라는 청년은 알수록 매력이 느껴지는마인드가 미남인 청년이었다.

 

조용하고 꾸준하게, 한 발씩 나아가는 삶

코로나로 많은 것이 멈췄던 작년은 현우에게 유난히 힘든 시기였다. 오랜 시간 준비했던 공연이 무산되었고, 불확실한 상황들은 원형탈모를 일으킬 만큼 스트레스가 되었다. 2020년 우리가 만났던 현우는 봉래산을 오르며 흔들리는 일상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1년이 지나 다시 만난 현우는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풍성한 웨이브의 머리카락에서는 탈모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졌고, 얼마 후면 개막될 연극 이야기를 하는 현우의 목소리에서는 살짝의 흥분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에게 짙은 잔상을 남긴 건 용접에 집중하고 있는 현우의 뒷모습이었다. 아침 8 15, 스크루 공장에서 홀로 용접에 집중하고 있는 현우의 뒷모습은 나에게 묘한 안도감과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 꾸준한 성실함과 조용한 열정이 1년 전에 비해 한발 더 나아갔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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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에서 신현우 님

 

10 19일 저녁 5 15

우리가 영도에서의 업무 일정을 마무리했을 무렵, 최예은이 우리를 만나러 왔다. 예은도 1년 전 우리의 인터뷰 대상이었던 청년이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서도 간간이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다. ‘오늘의 양식이라는 독립서점을 다른 청년들과 운영하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예은은 1년 전만 하더라도매력 있지만 아직은 취업 준비 중인 25살의 청년'이었다.

 

반짝임은 이유가 있다

예은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는 정말 반짝반짝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은의 반짝거리는 가능성은 이 사회의 언어로는 쉽게 기술될 수 없었다. 영도 바다를 자신만의 색감으로 그려내고, 누구보다 요리에 진심이며, 고생을 사서 하며 세상을 온몸으로 탐험해 온 예은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그런 예은을 어떤 경력이나 스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영도 청년 최예은'에게서 발견한 반짝임을 우리는가능성'이라는 다소 평평한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녀와의 만남에서 발견한 그 내면의 빛은 언젠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발현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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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예은 님 

 

조개구이. 꼼장어. 그리고 깨삐깡.  

오후 5 15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을 서너 시간 남기고 우리는 예은을 만났다. 너무나 반가운 만남이었지만 시간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려나 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우리를 태우고 송도 해변의 조개구이집으로 내달렸다. 바닷바람과 내음은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그러나 조개구이집은 휴무일이었고 그녀는 다시 우리를 태우고 꼼장어 구이집으로 달렸다. 예은의 배려는 투박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을새로운 세계로 데리고 가는' 독특한 감동이 있다. 이른 아침 영도에 도착해 일하느라 바다를 느낄 틈이 없던 우리에게 예은은 부산바다를 느낄 수 있는 바람과 맛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 것이다. 늘 예은과의 식사는 진한 기억을 남긴다. 하지만 그 저녁의 하이라이트는깨삐깡'을 받아든 순간이었다. 깨삐깡은 망치로 깨먹는 독일의 과자 슈니발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깡깡이 마을 망치'로 깨부숴 먹는 과자였다. 아니, 이름도 깨삐깡이라니. 정말 예은과 청년동료들의 감각과 기획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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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삐깡 

 

무엇이 좋은 삶일까? 무엇이 진짜 영도일까?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예은은 김해공항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차 안에서 우리는 예은이 요즘 벌이고 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1년 전 예은에게서 발견했던 반짝임이 무언가 실체가 되어 몽글몽글 나타나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아침에 엿본 현우의 뒷모습과 저녁에 건넨 예은의 깨삐깡을 떠올렸다. 그들은 가만히, 그러나 반짝이면서 영도의 오늘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하루하루는 영도의 빛과 질감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서울에 와서도 영도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영도는 매력 있는 관광자원을 가진 지역으로, 도시재생의 트렌드를 느낄 수 있는 멋진 문화공간들이 즐비한 곳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영도를 어느새 좋아하게 되어버린 나에겐 영도의 가장 큰 매력은 그곳에 있는 청년들이다. 마인드 미남 신현우, 기획력 있는 요리사 최예은이 사는 곳이 바로 영도이다. 그런 영도 청년들이 있기에 영도는 궁금하고 매력 있고 또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가만히, 반짝이는 영도 청년들.

그들은 오늘의 영도를 산다. 아니 그들은 오늘의 영도를 만들고 있다.

그 건강하고 반짝이는 삶에 나도 조용히 응원을 보낸다

서현선 진저티프로젝트 이사

‘나는 영도에 삽니다’ 편집자
가까이서 사람들을 늘 관찰하고 책을 읽듯이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듣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람이든 책이든 상황이든 읽고 이해하고 잘 설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을 즐거워하고 성장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읽고또읽고 #사람관찰덕후 #걸어다니는질문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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