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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것에 숨을 불어넣는 기록의 힘

배은희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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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은희 기록활동가 


도시의 오래된 기억과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주로 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산의 옛 모습을 떠올리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그리곤 한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게 되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100년도 안 된 이야기이다. 오래된 기억이라고 해 봐야 70~80여 년 전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도시의 변화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했고, 일본에서 부산을 통해 귀국한 귀환 동포들은 부산에 정착하거나 고향을 찾아 떠났다. 한국전쟁 과정에 수많은 피란민을 받아들이며 부산은 피란수도가 되었고, 이후 산업화 시기 일자리를 찾아온 이들을 품으며 산업 기반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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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송동 

 

이러한 배경에서 도시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았을 때, ‘부산이라는 틀에 하나의 정체성으로 지역성을 규정하기에는 마을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다채롭다. 도시 내에서도 지역마다 흥망성쇠의 내용이 달랐으며, 새로운 신도시가 계속 생겼고, 문화적 환경과 지형 또한 지역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다 모으면 부산의 역사와 맥락을 알 수 있게 하는 기록이 된다.

 

필자가 기록했던 마을들이 그러했다.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은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이 정착해 생성된 바닷가 절벽 위 마을이다. 재송동은 오랫동안 지속된 농촌사회에 뿌리를 가진 작은 마을이었으나, 정책 이주와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이 들어오면서 확장되었고, 수영강 인근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해온 마을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산복도로 판자촌의 도시 환경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대규모 정책 이주가 진행되었고, 이때 생긴 마을은 서동, 반송동, 반여동, 만덕동 등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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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여울 문화마을 

 

당감동은 귀환동포들이 먼저 정착했고, 이후에는 피란민들이 골목을 형성했으며, 신발 산업이 번창하던 시기 동양고무와 진양고무 등 인근 고무공장에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확장된 마을이다. 거제4동에는 일제 강점기 동해남부선에 근무하는 일본 노무자들을 위한 일본식 집단관사가 들어섰고, 1960년대 거제동 일대가 섬유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많은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산동네 마을이 생겼다. 그렇게 이웃으로 북적대던 이들 마을의 젊은이들은 이후 지역 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경제 활동지를 찾아 또는 좀 더 편리한 생활환경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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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동(좌), 당감동(우) 

 

이러한 기록은 문헌에서보다는 주민들의 기억과 경험에서 발견되었고, 검증되었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몸소 겪어왔고,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의 시대부터 새로운 첨단기술이 난무하는 현재까지를 관통하여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른들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기록이 세대 간 갈등을 줄여주고 소통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경험을 통해 믿고 있다.

 

신도시가 들어선 마을에는 이미 과거의 흔적이 사라졌고, 이제야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록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여러 공공기관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도시를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예전엔 이랬지라는 반응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개인이 겪은 각기 다른 경험을 찾아내는 일이다.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편적 단어나 표현으로 묶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소외되고 잊히는 대상을 최소화하고, 공동체의 소통을 끌어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미래의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지 그 방향을 모색할 레퍼런스가 기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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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명동 

 

얼마 전 북구 화명2동에 화명마을기록관이 개관했다. 화명동의 맨발동무도서관이 10여 년간 진행해온 마을기록 활동이 씨앗이 되어, 북구와 화명2동 행정복지센터가 협력해 마을기록관을 만들게 되었다. 아직 거버넌스 체계가 잘 마련되어있지 않지만, 주민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마을기록관을 지향하고 있다. 맨발동무도서관은 대천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 일대의 과거를 주민들과 조사하고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마을공동체의 뿌리를 발견했고, 주민들이 마을에 더 애착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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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명마을기록관 

 

최근 2~3년 전부터는 대천마을의 주택가가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보통 오래된 마을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재개발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맨발동무도서관의 태도는 달랐다. 작은 공동체가 도시개발을 반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니 어차피 닥친 현실을 앞두고 사라지는 마을을 기록으로 남기고, 새로운 주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이미 거주 중인 주민들과 새로운 주민들을 이어주는 매개가 기록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기록을 통해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마을에 대한 공통의 기억을 만들고자 한다. 마을기록관은 그러한 주민 소통의 공간이 될 것이다. 잊힐뻔한 것들이 다시 살아나 현재의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록은 과거의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사건, 장소,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우리가 있는 힘껏 기록하는 과거와 현재가 미래 세대의 풍부한 문화자산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배은희 기록활동가

기록하고 책 만드는 빨간집의 기록활동가.
사명감보다는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 업이 되어 몇 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공동체와 기록으로 협력하고 연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록활동가 #로컬리티기록화 #커뮤니티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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