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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호 주제를 정해 전문가의 글을 소개합니다

서로를 ‘새롭게 호명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작은 문화적 관계는 이어진다!

이유미 (사)인디053 마을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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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미 님 


칠곡인문학마을에서 인문학마을의 의미는 주민 스스로 함께 살아감을 연구하고 실현하는 삶의 공동체를 뜻한다. ‘인문학은 정형화된 학문체계를 의미하기보다는 생활의 지혜를 공유하자는 의미에 가깝다. 마을 만들기의 목표를 삶의 즐거움을 아는 것으로 설정한 칠곡인문학마을은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삶의 즐거움을 재발견하자는 것에서 출발한 활동이다.

 

2013년부터 9년간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오는 동안 32개의 칠곡인문학마을은 때로는 따로, 또 같이 함께 연대하고, 상호협력하는 경험공동체의 가치를 확대해왔다. 이웃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는 일상 속 문화 활동을 통해 마을들은 인문학마을의 문화적 관계망 안에서 함께 상생해 나가고 있다.

 

칠곡인문학마을의 인문이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의미가 존재한다. 어떤 마을에서는 문화적 배움을, 어떤 마을에서는 이웃과의 놀이를, 어떤 마을에서는 서로가 함께 마주하는 것만으로 인문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지난 9년 동안 칠곡인문학마을 이웃들은 다양한 문화적 관계 활동을 인문으로 체감하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문적 관계안에서 서로를 다양한 주체로 호명하고 있다. 이러한 호명의 방식은 농촌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상징이 되었다.

 

칠곡인문학마을에는 선생님’, ‘명장님’, ‘작가님’, ‘여배우’, ‘이장님’, ‘반장님’, ‘기자님등 다양한 역할이 존재한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존중의 언어로 호명하며 마을의 문화와 관계가 변화된 몇 가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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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갑도 교장 선생님 


금남리 교장 선생님


왜관읍 금남2리 매봉서당에는 김갑도 교장 선생님이 계셨다. 교장 선생님께선 사실 소문난 잔소리꾼이셨다. 할머니들에게 방 청소 해라, 화장실 청소해라, 전기 아껴라, 물 아껴라, 온통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거슬려서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셨다. 그런 시시콜콜 잔소리하는 모습을 애정이라 생각하고 마을 이장님께서 김갑도 어르신을 매봉서당 교장 선생님으로 불러주셨다. 그날 이후 교장 선생님은 잔소리 많던 어른에서 먼저 나서 빗자루 들고 청소하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마을회관에 도움 될 만한 일은 스스로 찾아 하기 시작하셨다. 그때부터 교장 선생님은 만나면 잔소리 듣기 두려운 분이 아니라 금남리를 방문하면 늘 맞이해주시는 마을 최고 어른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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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대 상쇠어르신 


신가이버와 상쇠어르신


이러한 재미난 호명에 신가이버와 상쇠 어르신 이야기도 있다. 보통 마을 풍물단 상쇠는 농악패에서 쇠(꽹과리)를 치는 잽이 중 가장 앞에서 전체 음악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데 금남리 풍물단 김성대 상쇠 어르신은 풍물을 잘 모르는 분이지만 젊은 사람들 틈에서 성실히 연습에 참여하는 모습에 상쇠 자리를 부탁드렸다. 이후 본인도 더욱 적극적으로 마을 일에 참여하시고 주민들도 성실한 상쇠 어른의 모습을 잘 따랐다. ‘신가이버 신길동님 역시 옆 마을에서 이사와 이웃들과 데면데면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손재주가 좋아 우연히 마을회관의 고장 난 물건을 몇 차례 고쳐주는 것을 보고 주민들이 신가이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뒤론 금남리 모든 공동꽃밭, 마을회관 등 시설 수리는 신가이버 신길동님이 책임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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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가이버 신길동 님  


참외 농사를 짓는 재생공예 명장님


북삼읍 보손2리에서 참외 농사를 짓던 김학술 명장님은 전국대학생인문학활동이라는 마을 구술서 발간을 위해 방문한 대학생들에게 숨은 재능이 발굴되었다. 한평생 농사짓던 틈틈이 취미로 신문지를 꼬아 만든 새끼줄로 복조리, , 호리병 등을 엮어 만든 솜씨에 칠곡군 전체가 화들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김학술 어르신은 재생공예 기술을 마을회관에 모인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였고 마을주민들 전체에게 이 기술을 전수하셨다. 새롭게 발견된 지혜 자원은 마을 주민들이 재생공예 강사가 되어 초등학교 학생들, 이웃 아파트 마을 엄마들과 나누었고 칠곡의 이웃들은 김학술 어르신을 명장님이라 불렀다. 김학술 명장님은 칠곡군 대표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제에서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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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술 명장님과 작품 


귀촌한 안동댁


기산면 죽전2리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새댁들에게 택호를 지어주고 택호식을 하는 마을 활동이 있다. 예전에는 남녀가 결혼하면 여성의 출신지에 따라 택호를 붙여 이름(:양산댁, 대구댁 등)을 대신했는데 대개 농촌의 어르신 세대에게는 익숙했던 택호문화지만 요즘 4-50대 여성들에게는 생소한 문화이다. 죽전2리 마을 어르신들이 귀농·귀촌해서 소위 들어온 사람이라 불리는 새댁들에게 지어준 택호는 어르신 세대가 후배 여성들을 배려한 존중의 호명이었다.

어르신들은 마을살이를 통해 친해진 마을활동가들을 딸처럼 영자야~ 영자아~”부르며 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딸처럼 부르던 영자의 아들이 서른이 훌쩍 넘은 장성한 청년인 것을 보고 어르신들이 그길로 택호를 받으라고 하였다. ‘이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데 그 앞에서 너희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 마을 어른들의 뜻이었다. 처음에 마을의 젊은 새댁들은 올드해 보이는 택호를 온몸으로 거부했지만, 어른들의 존중과 배려임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택호를 받았고, 이 택호 문화는 죽전2리 마을의 대표 마을살이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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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전2리 택호


마을에서 문화적 활동은 단순히 예술적 기능을 배우고, 취미 활동을 이어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마을이라는 작은 단위의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어있거나 더불어 함께 하지 못하는 이웃들을 문화적 관계로 연결해준다. 그리고 이 관계 안에서 개개인의 주체를 특별하게 호명함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글을 배우든, 풍물 가락을 연습하든, 꽃밭을 가꾸든 문화예술의 기능적 방법과 방식을 배우는 목적 지향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는 시간이며, 나와 우리의 새로운 수평적 정체성 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넘어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호명 주체가 등장하고 서로가 서로를 더욱 다양하게 부르고 불리며 크고 작은 역할들이 생겨날 때, 안전하고 편안한 문화적 관계망들이 견고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유미 (사)인디053 마을문화팀장

칠곡이란 도시에서 삶의 문화를 배우고, 관계의 문화를 익히고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단단한 날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며 매일매일의 일상 속 혁명을 발견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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