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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인력은 어떻게 출현하는가

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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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창의성은 오랫동안 나를 주눅 들게 하는 말이었다. 끊임없이 새롭게 무언가를 고안하고 실현해나가는 알파 리더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가진 재능이나 역량이 볼품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시원하게 뚫리지 않는 어떤 불편한 느낌을 안고, 나는 오랫동안 낑낑댔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답답증을 앓았으리라.

 

10살 무렵, 여름방학을 맞아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놀라움이 떠오른다. 높은 빌딩과 지하철, 광화문과 남산, 국립중앙박물관과 경복궁까지... 교과서와 TV에서 보던 것들이 모두 현실에 구현되어 있었다. 어린 생각에도 이걸 직접 눈으로 보고 자라는 친구들과 나는 이해의 수준이 다르겠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그 격차가 한국의 모든 지형을 좌우했다. 서울과 명문대로 대표되는 한국 엘리트들이 갖던 권력의 원천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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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 경복궁 관리소 홈페이지

 

창의성의 시대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라는 파고 앞에서 과거 학벌이 갖던 위상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는 여전히 그 기세가 등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 앞으로 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그 틈을 맹렬하게 파고들고 있는 것이 창의성이다. 이제 단순 지식을 넘어 생산현장까지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를 맞아 인류에게는 기계의 알고리즘을 남다르게 짜고 대처하며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핑계를 댔지만, 반드시 알고리즘 때문만도 아니다. 창의성에 대한 동경과 찬양은 인류 역사를 내내 관통해온 하나의 신화와도 같았다.

 

문화예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창의성은 예술가들에게만 해당되는 덕목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에는 다수의 문화기획자 양성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지역문화재단이나 지역의 단체들과 함께 하는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사업 외에도 개별 지자체 문화재단들이 개설한 과정들이 만발한다. 기획자 양성에도 지역문화 현장의 창의적 인력들을 길러낸다는 목표는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창의적 인력이란 무엇인가. 내 생각에 창의적 인력은 기존의 관행을 반복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창의성을 세상에 없는 무엇을 벼락처럼 만들어내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규정한다면, 창의성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이는 소수에 국한된다. 그러나 우리가 현장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는 아니다. 한 사람의 천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모델은 이제 시효를 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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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는 언젠가 서울의 명문대학들이 심각하게 자본에 포섭되어 더 이상 대학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탄식을 쏟아낸 적이 있다. 앞으로 비판적 지성은 삼성관과 이명박 라운지 등이 즐비한 명문 사립대가 아니라 이건희 명예박사를 거부한 지역의 국립대 같은 곳에서 나오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기존의 권위와 권력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확대재생산 하는 곳에서 창의적 인력이 나올 수 있을까. 세계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는 창의성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공동체를 위협하는 결정을 너무도 쉽게 기획하고 승인해버리는 것을 보며, 그것을 창의적 행동이라 칭송할 수 있을까.

 

그래서 창의적 인력은 무엇인가. 나는 창의적 인력의 조건으로 기존과는 다른 활동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용기에 더해 타자와의 협업 능력을 꼽고 싶다. 평범한 이들의 효율적인 협력이야말로 똑똑한 독불장군들의 독선을 넘어설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믿는다. 조금 엉뚱하지만, 최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징어 게임>의 한 에피소드에서 나는 이 창의성을 확인한다. 세 번째 게임인 줄다리기에서 주인공이 속한 조는 여성과 노인이 포함된 최약체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 팀이 우락부락한 장정들로 이루어진 팀을 꺾는 이변을 연출한다. 개별 능력을 과신하는 상대에 비해 팀 내 협력을 효율화하고, 기존의 관행을 비틀어버리는 용기 있는 선택 덕분에 이들은 살아남을 기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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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게임> 스페셜 포스터 | 넷플릭스

 

다시, 창의적 인력이란 무엇인가. 지금 이야기하는 창의성은 개인에게서 오롯이 뻗어 나오는 빛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선이며 연결과 협력, 관계와 경험에서부터 오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문화도시 사업은 문화예술 분야의 창의적 인력이 출현하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 기존 문화예술 사업의 관성을 넘어 도시 전체를 사고하고,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다른 분야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쌓아가는 경험과 지식들은 활동에 대한 새로운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창의적 인력의 토양이 되어줄 것이다.

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작가가 되고싶어 갔던 국문과에서 마주친 빼어난 재능들에 좌절, 창작을 포기하고 예술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웹진 예술경영 편집장, 연수문화도시 PM 등으로 활동중이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소비자가 꿈. 여전히 만화를 보는 시간이 행복하다.
#문화정책 #글쓰기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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